대한정형외과의사회(회장 이태연)는 소장 폐색환자의 수술을 늦게 했다는 이유로 외과 의사에게 업무상 과실치상죄를 인정하여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한 사건을 접하고, 의료과실의 문제를 일반적 범죄행위와 동일한 선상에서 판단하는 것에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모든 치료의 원칙은 보존적 치료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상호전이 없을 경우 수술적 치료로 전환하는 것이 모든 외과 교과서에 나와 있다. 의료행위란 것이 불가피하게 상해와 유사한 인체 침습행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행위는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기에 지연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복강 내에 발생한 출혈이나 천공 그리고 장유착과 같은 합병증은 일반적인 검사 방법으로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매우 많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외과의사의 입장에서 당연히 장 폐색을 의심하기는 했지만, 응급수술을 필요로 하는 상태로 판단하지 않은 여러 변화와 증상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상태를 다소 늦게 지연 진단했다는 이유로 형사상 주의위반에 해당하는 의료 과오로 판단하고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해 의사를 단죄하면 의료시스템에 또 다른 중대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즉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의료행위의 최전선에서 최선의 의료를 시행해야 하는 의사들이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방어적인 방법에만 집중할 것이고, 조금만 의심되더라도 최후의 수단인 개복수술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될 것이다.
치료 방법과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의사의 고유 권한이고 이는 모든 전문직 직종의 권한이다. 학교 선생님의 교육 방법이 다양한데 시험 성적이 안 좋다고 교육방법을 문제 삼는다면 선생님을 그만두라는 것과 다름없다. 죄수가 재범하면 판ㆍ검사 교도관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과 이번 재판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
의료의 결과는 예상할 수 없고 의학은 미완이므로 누구도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인데 이러한 판결로 가뜩이나 어려운 외과계는 더욱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의사로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의료행위를 시행함에 있어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해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의문을 제기하기 어려운 명제이다. 그렇기에 적절한 의료행위를 선택하거나 시행하는 의사 결정하는 과정이 신중해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개복수술 같은 최후의 방법을 선택할 때 시간적 지연이 발생한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일률적으로 의료인의 과실 유무를 따져 형사처벌하는 문화, 검찰·경찰의 강압적인 수사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 치료 과정에서 결과만 나쁘면 의사를 처벌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수술이나 시술하는 의사들은 잠재적 범죄자와 다름이 없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지속적인 보수 교육, 동료 평가로 통해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재발방지 방안 마련하는 것으로 국민 건강을 두텁게 하고 있다. 해외 다수의 국가에서 의료인의 면허관리를 엄격히 하고 있지만 정작 의료인의 형사처벌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유독 우리 나라의 경우 형사처벌 빈도가 매우 높은데 이번 판결은 정상적인 의료 행위도 형법상 과실치사상죄의 적용이 가능하게 하므로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는 의사의 의학적 판단도 결과가 나쁠 경우 과실 치사상죄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와 유사한 판결이 반복됨으로써 의사의 소신 진료가 위축되고 가뜩이나 어려운 필수 의료계 뿐만 아니라 전체 의료체계가 붕괴되는 사태를 간과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 이번 판결을 시행한 재판부가 엄격한 증거에 의거 하여 판단했을 것이나, 의료진들이 항상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며 적절한 치료를 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므로 다시 한번 재판부의 혜량을 간곡히 요청하는 바이다.
2021년 12월 24일
대한정형외과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