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의대를 통해서 본 새로운 의학교육의 변화
전우택
연세의대 의학교육학
* 하버드 의대의 새로운 교육 혁명
하버드 의과대학은 2019년부터 새로운 커리큘럼을 도입한다. 새 교육과정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교육 기간 배치의 변경이다. 1학년 때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에 대한 강의를 모두 끝낸다. 2학년 때에는 임상 실습을 돈다. 이것은 과거보다 7개월 일찍 시작하는 것이고, 한 환자를 장기간 follow up 하면서 병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보게 하고, 동료들과의 관계 경험을 중시여기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3-4학년 동안에는 집중적이고 심화된 학습과 연구(focused, advanced studies and research)를 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교육 기간 배치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둘째, 학생 연구의 강화이다. Harvard-MIT Health Science and Technology (HST) MD program 등 학생들의 연구력을 높일 수 있는 강력한 프로그램을 트랙으로 도입하여 운영한다. 셋째, 새로운 학습방법, 즉 Flipped Learning의 전면 도입이다. 수업 시간에 교수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강의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사전에 제작된 동영상 및 과제물을 통하여 학생이 수업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스스로 학습하게 한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는 소그룹으로 나뉘어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한 지식 적용 토론을 하고, 교수는 그런 토론을 지도하고 평가한다. 수업은 핵심지식 뒤에 존재하는 원칙을 탐구하는 것을 지원하는 시간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한다. 학생들의 학습 방법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 의학교육의 변화 방향
왜 하버드 의과대학은 이런 급진적인 교육 변화를 하려는 것일까? 이것은 미래의학교육의 어떤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의사가 가져야 하는 의학적 지식을 의사가 습득하는 방법과 형식이 완전히 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 유능한 의사, 명의가 되는 방법은 교과서의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잘 기억하고 있고, 최신 논문들을 부지런히 읽어 알고 있고, 많은 개인적 임상 경험을 통한 “임상적 분별력과 지혜”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발전과 그것의 의료계에서의 적용은 이런 과거의 틀을 근본적으로 완전히 바꾸게 하였다. 교과서적 지식을 기억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인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컴퓨터가 이미 완벽하게 모든 것을 저장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신 논문을 의사가 읽어 가는 것과 비교가 안 되게, 그리고 자신의 전공 분야 영역 뿐 아니라, 완전히 다른 영역의 어제 나온 논문까지를 인공지능은 모두 검색한다. 그리고 한 명의 의사가 가졌던 임상 경험을 토대로 하는 판단이 아닌, 수많은 의사들과 의료 기관들의 임상 경험을 빅 데이터로 정리하여 그 중 최상의 결정을 판단하고 선택하게 한다. 이런 세상이 되고 있기에, 미래 의사들을 교육하고 있는 의과대학의 교육 방식도 혁명적 변화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지식을 머릿속에 암기하도록 하고, 어느 정도 암기하였는가를 측정하는 평가 방식은 없어지게 된다. 기본적 개념을 이해한 다음에는, 바로 문제 해결을 위하여 기존의 지식과 정보를 어떻게 불러내고, 변형하여 적용하는지를 스스로 익히도록 하는 것으로 교육의 본질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둘째, 미래 의사는 완전히 두 종류의 직종으로 나뉠 것임을 보여 준다. 즉 인공지능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 환자에게 진료를 제공하는 의사들의 집단이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인공지능에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입력시키는 의사들의 집단이 있게 될 것이다. 좀 극단적인 표현을 한다면, “인공지능에 지배를 받는 의사들과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의사”로 나뉠 것이라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의사들은 그 전문성을 점점 더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간호사, 간호조무사, 약사, 간병인, 사회복지사 등과 일정 부분 겹치는 역할로 갈등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의사들은 기존의 의사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의 더 큰 사회적, 의학적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인공지능에 입력하는 그 내용이 한 국가와 전 세계의 의학과 의료를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좋은 연구를 통하여 의미 있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의학교육의 경쟁 내용이 될 것이다. 하버드 의대는 그것을 의식하고 변화해 나가는 것이다.
셋째, “의료-인간-사회” 라는 세 주제가 삼각형 모형으로 서로 이어져 있는 것에 대한 본질적 이해와 그 처리 능력을 가지도록 하는 교육으로 가는 것을 보여준다. 임상 실습 시, 더 다양하고 많은 환자들을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명의 환자가 처음 외래를 방문한 후, 진료를 받고, 검사를 받고, 수술을 받고, 회복하여 집으로 퇴원하여 외래로 다니는 전 과정을 학생 한 명이 전담하여 같이 체험하도록 하는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환자가 가지는 심리적 갈등, 가족들과의 관계의 변화, 진료비 걱정과 진료비를 내기 위하여 취하는 조치들, 그런 진료비를 그렇게 지불하도록 하는 사회 시스템과 제도 등에 대하여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막연히 강의 시간에 간단히 듣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 환자 곁에서 진짜 실제 상황을 같이 겪도록 하는 이런 교육이 의대생들로 하여금 의료와 의학의 진정한 “인간(인문)-사회-의과학의 복합성”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능력을 가지는 의사들은 간호사나 약사들과 역할 갈등을 가지지 않는다. 인간을 돕는 일에 있어 환자, 보호자, 사회를 향한 분명한 리더십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능력을 가지지 못한 의사들은 역할 갈등 속에 점차 더 초라해져 갈 것이다.
* 한국 의학교육의 미래
어떻게 보면,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후발 국가들도 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똑같이 사용하게 되면서 활동의 수준을 단번에 선진국 수준으로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인공지능에 투입하는 새로운 정보와 프레임, 규칙들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바꾸어 가면서 후발 국가들이 영원히 따라올 수 없게 만드는 시도들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미국 의과대학들은 소위 “4차 산업혁명과 미래사회”에 대응하는 의학교육으로 혁명적 변화들을 시작하였다. 2차 산업 혁명에서는 너무도 뒤떨어진 우리나라였지만, 3차 산업혁명에서는 상당한 능력을 보여 주어 오늘에 이른 우리나라다. 이제 전 세계, 각 영역으로 밀려들어오는 4차 산업 혁명에서 우리나라가 먼저 대응하고 주도하는 능력을 보일 수 있느냐에 우리 민족의 미래가 달려 있다. 그리고 그 대응과 주도에 의학과 의학교육이 최전선에 서있다. 실제로 4차 산업 사회에서 보건의료가 핵심에 있고, 우리나라의 가장 똑똑하고 유능하여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젊은이들 대부분이, 바로 이 의학계에서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학교육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출처 대한의학회 e-NEWSLETTER No.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