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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성명서


의료인 폭행 사건에 안일하게 대처한 경찰은 즉각 사죄하고, 정부는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보다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라.

 
지난 1일 오후 10시경 전북 익산의 한 응급실에서 당직 근무 중이던 의사가 술에 취한 환자에게 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당직 의사는 안면부 골절과 뇌진탕이 생기고, 의식을 잃을만큼 폭행을 당했으나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가해자를 제압하지도 않았고, 경찰 출동 이후에도 가해자가 의사를 향해 살해 협박까지 하는 상황도 제지하지 않았다. 심지어 피해자인 의사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음에도 경찰은 담당 형사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고소장 접수를 거부하였으며 다음 날 가해자를 풀어주기까지 하여 의료계의 공분을 샀다. 그런데 이후 이 사건 관련 동영상이 공개되자 너무나 충격적인 폭행 장면에 의사를 포함한 모든 의료계 종사자들은 분노하였고, 파장은 일파만파 커져가고 있다. 

그 동안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으나 경찰과 정부 당국의 미온적인 대처로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진료실 폭행 가해자에 대한 가중처벌법도 마련되었지만 실효성은 없었다.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이 줄어들지 않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특히나 많이 거론되는 원인은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다. 대부분의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에서 경찰들이 가해자를 제압하지 않아 추가 폭행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았고, 의료진들의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 요구는 철저히 무시당하여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만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의료기관, 특히 응급실은 한정된 의료진이 많은 수의 응급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 의료진들이 폭행을 당하면 의료진의 안전도 문제가 되지만, 진료를 받아야 하는 다른 환자들이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게 되어 위험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의료기관에서 일어나는 폭력 사건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다른 환자들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단순 폭력 사건보다 더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 가해자가 당장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라면 당연히 빠르게 제압하여 해당 의료기관으로부터 격리하고,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면 타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게 한 뒤 엄중 처벌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경찰 내부적으로도 이러한 매뉴얼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제압은 커녕 오히려 가해자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피해자인 의료진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의 대응을 보이기도 하여, 의료진들이 폭력 사건 발생 시 경찰을 신뢰하지 못하는 경향도 생기고 있다.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 발생 시 관할 경찰서로 연락하지 말고, 반드시 112로 전화하라는 내용이 포함된 의료계의 폭력 사건 발생 시 대응 매뉴얼만 보아도 그 동안 경찰이 의료진들에게 얼마나 신뢰를 잃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제라도 폭력 사건을 방지하고,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안일한 대응을 한 관련 경찰에 대한 강력한 징계가 이루어져야 하고, 담당 경찰들은 진심 어린 사죄를 해야 한다. 그리고, 경찰과 의료계가 공동으로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팀을 만들어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현재 실효성 없는 가중처벌법을 유지하기 보다는 의료진의 안전이 곧 환자의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가해자에 대한 단순한 가중처벌 뿐만 아니라 의료진 보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법률개정이 필요하다. 그 내용에는 폭력 가해자에 대한 건강 보험 가입자 권한 박탈, 의료진에 위협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환자에 대한 진료 거부권 인정 및 가해자의 해당 의료기관 접근 금지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정부와 국회가 먼저 나서야 할 것이며, 그 동안 이와 관련된 법을 반대해왔던 환자 단체들도 폭력 가해 환자만 옹호할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추가적으로 피해를 입게 될 더 많은 환자들을 대변하기 위해서라도 법 제정에 적극적인 찬성 의견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의료는 각종 악법과 규제로 곳곳이 곪아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와 모든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오로지 국민들의 건강을 수호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왜곡된 이 의료시스템을 힘들게 유지시키고 있다. 

하루하루 버텨내기도 힘든 이런 상황에서 폭력에도 무방비로 노출되고,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도 받지 못한다면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일을 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기관 내에서 폭력이 완전히 근절되고, 환자와 의료진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지 못하면 대한민국 의료는 붕괴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2015년 동두천에서 발생한 응급실 폭력 사건에 대해 검찰이 약식기소 벌금 300만원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병원에서는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응급실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응급실 폐쇄를 결정하였고, 그로 인하여 동두천에 유일하게 운영되던 응급실이 사라지게 되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고 나서야 동두천시장까지 나서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약속하였고, 재발 방지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병원 측은 다시 응급실을 폐쇄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는 응급실 업무를 재개하였다. 

2015년 동두천에서 일어난 일이 대한민국 전체의 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찰과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가 반드시 필요하다. 

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본 회)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번 사건을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어 협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하였다. 그 이유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본 회의 회원인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봉직의사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을 근절시키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대한민국 의료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회는 의료기관 내 의사 및 의료진에 대한 폭력 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이번 사건에서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했던 경찰을 규탄하며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하나, 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하고, 가해자 처벌에도 비협조적인 반응을 보였던 해당 경찰들을 경찰은 강력히 문책 및 징계하고, 해당 경찰들은 피해자와 국민들 앞에 공개적으로 사죄하라.

하나, 경찰은 의료계와 협력하여 의료기관내 폭력 사건 대응 TF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앞으로 의료기관의 의료진과 환자들이 경찰에 보호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라.

하나, 정부와 국회는 환자와 의료진이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법률 개정안을 마련하라.

 
2018년 7월 4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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