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오스카상 최우수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된 영화에는 실화(實話)에 근거를 둔 것이 네 편 포함되어 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전설적 스나이퍼인 크리스 카일, <이미테이션게임>은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셀마>는 1965년 선거법 제정,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다뤘다.
각각의 영화는 팩트를 부정확하게 다뤘다고 비판을 받았다. <셀마>는 린든 존슨이 흑인에게 선거권를 부여하는 데 헌신했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 아닐까? <이미테이션게임>은 튜링의 대표적 업적을 제대로 알렸나?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스티븐 호킹의 일생을 제대로 묘사했나?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무력갈등을 의도적으로 합리화한 것은 아닐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게 뭐가 중요해? 영화는 영화고 실제 세상은 세상이지, 그걸 구별 못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설사 당신이 잘 아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를 보는 경우에도, 당신의 신념이 픽션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2009년 《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한 연구진은 대학생들에게 역사책을 읽게 한 다음, 역사책과 일치하지 않거나 부정확한 내용이 담긴 영화를 보여줬다고 한다. 그리고 간단한 테스트를 한 결과, `영화에는 팩트를 왜곡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전경고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평균 1/3의 픽션에 동그라미를 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는 얼마든지 더 있다. 2012년 《Applied Cognitive Psychology》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연구진이 학생들에게 `부정확한 부분을 모니터링하면서 영화를 보라`고 분명히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학생들은 팩트보다 픽션을 더 잘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다고 하니 말이다. 학생들이 영화에 더 몰입할수록, 그들의 기억은 픽션에 더 쉽게 오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영화의 픽션과 실제 세상의 팩트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뭘까? 한 심리학자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보거나 들은 정보를 더 잘 기억하도록 설정되어 있으며, 그 정보의 출처가 어딘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인간의 진화사를 살펴보면, 인간의 먼 조상들은 언어를 이용해 서로 팩트를 주고받고, 그것을 기억 속에 저장하는 능력이 점점 더 증가해 왔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사냥꾼이 사바나에서 물웅덩이에 접근하다가 사자에게 공격당한 적이 있다면, 그 사실(물웅덩이 근처에는 사자가 숨어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다)을 기억해 두는 것은 생명유지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나중에 기억을 더듬을 때, 그 정보의 출처(예컨대, 사촌에게서 들었는지 형제에게서 들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뇌에서 정보의 출처를 기억하는 부분은 그리 완벽하지 않으며 종종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설명은 사변적(思辨的)이라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우리가 출처기억(source memory)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과 상당부분 부합된다. 인간의 인지발달 과정을 살펴보면, 어린이의 출처기억은 비교적 늦게 발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신경학적으로 살펴보면, 출처기억은 전전두피질(PFC: prefrontal cortex)에 선택적으로 의존한다고 하는데, 전전두피질 역시 늦은 시기에 성숙하는 영역이다.
게다가 출처기억은 매우 연약하고 노화에 매우 민감하다. PFC가 손상된 환자들은 출처기억이 부실해서, 일상생활에서 많은 실수를 범하곤 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PFC가 손상된 환자 한 명이 `인근에 있는 건물이 사악한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믿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환자의 이 같은 피해망상적 해석의 원인은 - 어처구니 없게도 - 40년 전 봤던 스파이영화였다고 한다.
1997년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PFC가 손상된 환자에게 단어나 문장의 목록을 읽어주되, 그중 절반은 남성이 나머지 절반은 여성이 읽어줬다고 한다. 그 결과 환자들은 문장이나 단어 자체는 잘 기억하지만, 읽어준 사람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건강한 대조군들도 - 정도는 다를지언정 -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요컨대, 출처기억의 약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출처기억의 약점 때문에 부정확한 영화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위에서 언급한 논문들 중 하나가 제시한 해결책은 이렇다. "영화를 보는 동안, 팩트를 잘못 묘사한 대목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잘못을 지적하고 수정해 줬더니, 출처기억에 미치는 악영향이 감소되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방법을 현실에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팩트에 관한 주석을 영화 밑에 자막으로 깔아, 상영 시간 내내 관객에게 보여줘야 하나? 아니면, 박물관의 학예사처럼 역사가를 극장에 상주시킬까? 아니면, 영화를 보고 나가는 관객들에게 책을 한 권씩 나눠줘야 할까?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히 요망된다.
※ 이 글의 필자인 제프리 M. 잭스는 워싱턴 대학교의 심리학/방사선학 교수로, 『Flicker: Your Brain on Movies』의 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