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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공의 처우 및 수련환경 개선에 부쳐

임인석 교수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


임인석 교수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

대한민국의 전공의 제도는 1958년 인턴제 도입을 시작으로 56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부분적인 변화를 제외하고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 당사자인 전공의들은 물론 의학교육학계와 병원계의 중론이다.

2008년 서울대병원 전공의들은 병원 경영진과 1년여 동안의 협의 끝에 주당 최대근무시간을 88시간으로 정하고 당직을 포함해 연속해서 48시간 초과근무를 하면 안된다는 전공의 근무지침을 제정하였으며, 이듬해 대한병원협회도 전공의 적정수련지침을 통해 '주간 및 야간 당직이 과도하게 연장·지속돼서는 안된다. 야간 당직은 주 3회를 초과할 수 없다'는 권고안을 내놓기도 했다. 2014년부터는 수개월간 전공의 수련환경 모니터링 평가단을 통해 수련시간을 최대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하는 등 8가지 수련환경 개선 조치가 추진되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근무 여건이 나아졌다고 하는 전공의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014년 10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자체 설문조사(1617명, 2014년10월24일~11월13일)를 통해 전체 전공의의 81.4%가 수련규칙 개정 이후에도 근무시간이 동일하며, 절반 가까이(44.5%)는 병원으로부터 수련현황표를 거짓 작성하라는 직접적인 압력을 받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 전공의들은 주 80시간보다 초과 근무를 할 경우 사유서를 작성하도록 병원으로부터 강요받았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대학병원 내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또한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많은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수련 환경과 근로 여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병원 측에구체적인 대안으로 입원 전담 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의 고용을 직접적으로 요구했을 뿐 아니라, 현재의 문제가 단순히 일개 과나 병원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전공의들이 무리하게 초과근무를 해야 한다는 것은 환자들을 위한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전공의의 근로 시간을 법으로 엄격히 제한하는 이유는 전공의들의 처우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환자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다. 또한 전공의가 초과근무를 하느라 양질의 수련을 받지 못 한다는 것은 향후 우리나라 의료의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역시 국민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전공의 수련환경 및 근로여건 문제는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당면해 있는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독립적인 수련환경 평가기구의 설립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및 동 시행규칙에 의하여 대한병원협회는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수련병원(기관)의 지정 및 전공의 정원책정을 위한 자료조사 업무 그리고 전공의의 임용 및 수련확인과 관련된 업무 등을 위탁 받아 시행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의 기본적인 역할을 위임받은 대한병원협회는 현재의 수련병원 지정제도 및 전공의의 정원책정을 책임지는 주체로서 전공의의 근로환경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대한병원협회는 위탁받은 수련병원 지정 업무의 일환으로 ‘병원신임평가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매년 현지 평가 및 서류 평가를 하고 있으나 현재 각 수련병원의 신임결과로 수련환경의 평가를 투명하게 반영하기에는 미흡하다. 더불어 현지 평가 시, 조사대상이 되는 전공의의 개인 신분 비밀이 보장되지 않아 객관성과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의료현실상 수련병원 지정에 대하여 권한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체제를 불가피하게 용인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지만, 전공의의 근로환경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당사자로서 도외시한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01년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의 전공의수련제도와 병원신임제도의 개선방안에서 “대한병원협회의 병원신임위원회는 병원장을 회원으로 하고 있는 병원협회에 의하여 운영됨으로써 병원이 집안끼리 신임을 청구하고 심사함으로써 객관성과 공정성이 손상되고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보고한 바 있으며, 고 김일호 제
11기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역시 “전공의 TO를 배정하는 신임평가기구가 사용자단체인 대한병원협회에 있다 보니 신임평가 항목도 느슨하고,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의 수련평가기구는 경영자적 편견이 들어갈 수 있어 제대로 된 전공의 수련
을 위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를 할 수 있는 독립된 별도 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전문의 제도는 전문학회에서 운영하는 제도이며 일종의 민간 비영리단체인 ACGME에서 이를 담당하고 있다. ACGME는 전공의 수련교육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단체로서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구체적인 근로시간 지침권고안을 만들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수련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주체가 근로환경에 대한 기준을 함께 제시하면서 합리적인 개선안이 도출되었다는 점에서 ACGME의 사례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근로자로서 전공의의 특수성과 수련시간 전공의들은 피교육자이면서 근로자로서의 이중적인 위치에 있다. 대법원 판례를 통해 ‘전공의는 병원 경영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근로기준법 제14조 소정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전공의의 근로자성을 부인할 수 없다면 전공의의 근로와 관련된 모든 부분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밀린 수당을 지급하라며 인턴의 손을 들어준 대전고등법원의 확정 판결은 더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10개월간 근무한 인턴이 K대 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약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하였으며,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소한 형사사건에서는 이사장에게 1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되어 유죄가 확정되기도 했다. 그 동안 보건복지부가 전공의의 근로 조건에 관해 숙고해왔으나 그 결과가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다. 더 나아가 최근 근로기준법의 규정에 대하여 전공의들이 엄격하게 적용을 요구함으로써 의료체계의 마비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게 되었다. 이미 병원을 상대로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라며 전공의
들은 줄 소송을 준비한다고 한다.

현재의 수련환경 개선안은 자체 합의를 통해 80+8시간의 수련시간을 도출하였지만 법적으로 전공의의 근로시간은 상위법인 근로기준법의 원칙적인 입장, 즉 1주간 40시간 근무를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전공의들이 피교육자로서 교육을 받고 있다는 측면을 고려해 교육시간을 따로 분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전공의들의 현실을 반영하기에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고 전공의들 스스로 수련을 받기에도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전공의들의 적정 수련시간 기준을 도출하고 이를 현실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무관심할 수 없는 부분이며, 당사자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협의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전공의가 처한 과중한 근무여건에서는 전공의 수련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적정시간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지속적으
로 모색되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과 부담 우리나라의 전문의제도의 운영 권한은 여전히 보건복지부에 있다. 보건복지부
는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에서 의료관계 단체에 위탁하는 것과는 별개로 수련병원 또는 수련기관의 지정 및 전공의의 정원책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보건복지부는 좁은 의미의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기준 마련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안정적인 수련 보장에 대한 의무를 가지며, 이를
보장해야 한다.

의료는 국민건강의 기본으로 많은 나라에서 보건의료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전공의 수련을 국가가 지원하는 예가 많다. 영국은 의료서비스를 국방·치안 등과 같이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서비스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비용 전액을 국가가 지원하는 병원 예산으로 부담하고 제공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전공의 임금은 보건부가, 지도 전문의 인건비는 교육부가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국가가 필요 재정 전액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에서조차 전공의 교육에 Medicaid나 Medicare에서 재정이 충당된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우리나라는 의료기관 당연지정제를 통해 의료가 엄격한 국가의 통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양성기간동안 국가의 재정적 투입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전공의 수련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그 개선안을 도출하고 있으나, 정부가 무조건 그 개선안을 따르라고 병원에 제시하는 것은 지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이다. 수련병원은 수련·교육·연구 기능을 수행하는 보건의료에 있어서 중추적인 병원인 만큼 진료를 위한 공간이나 장비 외에도 수련과 연구를 위한 별도의 시설에 대해 투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투자는 각 병원의 사정에 따라 필요로 하는 일정 수준에 비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전공의 수련에 대한 국가 지원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수련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에 대한 대국민 인식 변화를 위해 전공의와 병원계 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도 같이 노력해줘야 한다.

새로운 법안에 거는 기대 전공의 수련환경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끎으로써 전공의의 인권 개선과 환자의 건강권 보장, 그리고 의료서비스의 질 개선을 이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왜곡된 의료구조를 선순환 시키는데 기여하리라 생각된다. 이와 같이 전공의 제도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대한민국의사들은 90%이상이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을 거쳐 왔지만, 과연 그 결과가 국민들에게의 질 높은 의료 혜택인지 숙고해 보아야 할 때이다.

전공의특별법은 오로지 전공의들을 위한 법이 아니라 꼬여있는 실타래 같은 의료계에 산재되어 있는 문제를 푸는 첫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전공의 특별법 제정을 통해서 전공의의 인권을 보장하고, 수련환경의 문제점들을 하나씩 고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공의 수련환경의 개선을 위해서는 그에 대
한 지속적인 감시체계 관리 및 근로시간 보장을 위한 대체인력 고용 등 다방면의 재정적 지원이 필수적 요소이므로 정부에서도 보다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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