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한림의대 사회의학)
우리나라는 메르스 집단발병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큰 고비를 넘긴 듯 하지만, 결코 안심할 때는 아니다. 2012년 최초로 보고된 메르스는 우리에게는 낯선 질환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숙주인 낙타가 많은 중동지역 국가를 제외하고는 미국, 캐나다, 영국, 여러 동남아 국가 등 십여 국가에서 중동지역을 여행 다녀 온 이들에 의해 시작된 메르스 전파는 모두 5건 미만으로 그쳤다. 우리와 같은 대규모 집단발병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왜 그럴까?
메르스 사태를 초래한 요인들은 언론지상과 학계 내외에서 이미 많이 거론되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원인을 열거하자면, 방역체계의 부실, 공중보건위기 대응체계 부재, 허술한 병원내 감염관리, 다인실병실과 간병문화, 그리고 일차의료기능 왜곡과 의료기관 쇼핑 등이다. 즉 메르스 질환 자체는 생물학적으로는 감염성 질환이지만, 이의 집단발병은 한 나라의 보건의료체계의 총체적 부실이라는 요인이 깊게 관련된다는 점에서는 사회적 질환이라 할 수 있다. 감염성 질환에 대한 개인 예방은 손 씻고, 기침 예절 지키면 되겠지만, 허술한 방역체계에 노출된 개인이 그 구조적 위험을 어떻게 피해나갈 수 있을까?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몰렸던 많은 환자들은 그 어떤 예지력과 훌륭한 건강행태를 갖고 있더라도 14번째 확진환자의 기침을 피해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의학적 지식은 제대로 된 의료체계를 만나야 비로소 건강을 지켜내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최근 국제기구에서 발표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관적, 객관적 건강지표를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주요 사망원인의 하나인 심장질환 사망률의 변동(1990년에서 2011년)을 타 국가와 비교해 보면, 대부분의 OECD 국가는 감소(평균 -42%)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증가하고 있고, 그 증가율 또한 엄청난 수준(+60%)으로 높다. 자가평가 건강수준으로 평가한 2011년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관적 건강수준은 OECD 국가 중에서 끝에서 두 번째로 좋지 않다. 아울러, 올해 세계적인 전문조사기관인 갤럽에서 발표한 2014년 국가간 웰빙인덱스를 보면 신체건강지수가 조사대상국가 145개국 중에서 138등이어서 전쟁 중인 이라크보다도 더 낮은 수준이다. 더 이상 어떻게 더 나빠질 수 있겠는가?
따라서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문제는 단순히 몇몇 감염병원시설 보완과 같은 응급조치 수준의 대응을 넘어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가 근본적인 개혁을 필요로 한다는 절박한 인식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보건의료환경이 이렇게까지 부실해 진 이유는 보건의료에 대한 사회적 투자의 부족에 있고, 국민 전체의 건강 공공성을 지켜내는 공중보건인프라에 대한 투자 미비에 놓여 있다는 과학적 성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국민의 건강을 국정의 주요 의제로 설정하고, 효율적인 보건의료체계 마련과 건강 관련 삶의 질을 책임지는 전문성 있는 전담 부처의 신설요구는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마련된 보건의료체제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메르스 환자에 대해 ‘살려야 한다’는 각오로 사투를 벌이는 의료인에 대해, 그리고 감염 경로 추적과 확산 차단을 위해 밤낮 없이 전국을 뛰어 다니는 역학조사관에 대해 국민들은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고 있다. 이제 국민 모두에게 건강의 파수꾼인 의료인들의 진정한 목소리가 전달되어야 한다. 반보를 가더라도 보건의료개혁의 물꼬는 국민과 함께 열어가야 한다.
출처 ;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 No.63 (2015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