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적 측면에서 바라본 인공지능의 미래
장 혁 재
연세의대 내과학
우리가 인공지능이라 부르는 기술은 이미 1950년대 후반부터 몇 번이나 그 기술적 가능성이 제시되어 온 것인지라, 어떤 이는 유전자 치료나 줄기세포 치료와 같이 의학분야에 급격한 관심과 화려한 등장만큼 빠른 속도로 사그라진 기술과 가능성을 먼저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표방하고 시장에 넘쳐나는 청소기나 세탁기와 같이 오랜 '제어공학'에 기반한 기술이나, 사람이 미리 정한 상세한 규칙(Rule)에 따라 입력에 따른 출력을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입력한 지식 이상의 것을 수행할 수 없었던 과거의 인공지능 시스템과 달리 이제 도래한 기술적 혁신은 인류가 만들어낸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기계학습 기술과 입력값의 특징표현 자체를 학습하는 '딥러닝' 기술이 합쳐진 거대한 기술의 파도이다.
예컨대, 과거 인공지능 기술이 학생에게 참고서를 놓고 하나하나 문제 푸는 방법을 가르쳐주거나, 혹은 기본적인 원칙을 가르쳐 준 후 응용문제를 풀면서 지식을 습득하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우리가 접하는 인공지능 기술은 학생을 서고에 데려간 후 '책을 백 번 읽으면 자연히 그 뜻을 깨달을 수 있다(百讀意自見)'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과거 2000년대 초반 도입된 의료정보시스템을 통해 구축된 도메인 온톨로지, 십여 년간 축적된 조직화된 자료, 웹 사이트에 연결된 수많은 논문자료와 같이 이미 우리의 서고에 쌓인 정보의 분량은 특정분야에 평생을 쏟은 전문가라 하더라도 모두 습득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많아져 버렸고, 그 분량의 격차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어 적어도 인공지능이 지식에 기초한 현명한 판단을 수행하는 내과의사보다 나은 판단을 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어떠한 내과적 진료행위를 대치하게 될 것인가? 향후 약 5년간은 CT, MRI 등 영상검사와 뇌파검사 등 기능검사 초벌판독의 대부분을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수행하는 것을 목도하며 내심 불안해 할 수 있는 있을지라도 대다수 내과의사에게 변화는 피부로 느껴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술발전의 속도로 미루어 그 이후에 대다수의 내과의사의 행위는 상당 수준 바뀔 가능성이 크다.
가장 먼저 다가올 변화는 의료보험과 관련해 진료행위의 적정성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이 될 것이며, 이는 현재와 같이 많은 수의 보험심사인력이 투입되어 개별행위에 대한 적정성을 평가하는 방식과 달리 포괄적 의미의 의료기관 또는 의료인에 대한 평가를 통해 급여지급 수준을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특징학습에 기반한 인공지능이 어떠한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을 때 어떤 논리적 추론과 정보활용을 통해 해당결과를 도출하였는지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으며, 따라서 환자의 진단이 무엇인지 혹은 예후가 나쁜 환자가 누구일지 인공지능이 알려주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해당환자의 예후를 개선해야 할 지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내과적 진료분야의 인공지능은 기존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수준단계에서 도입되기보다 인공지능이 기존 프로세스에서 활용되는 것보다 더 좋은 특징(feature)을 잡아 내 새로운 프로세스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시점에서 '진단 - 검사처방', '진단 - 치료처방' 행위를 포괄적으로 대체하는 형태로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람이 접하는 접점은 여전히 사람에게 맡겨진 몫이다. 내과의사의 역할이 올바른 진단과 정확한 처방에만 있지 않고, 환자가 해당 진단을 수용하고 협조하고, 생활을 변화시키는 전 과정을 통해 원하는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일차 진료현장에서 역할의 특정부분은 보다 강조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현재 상황에서 의료기관이 어떤 분야를 어떻게 특화 시켜 나아가야 할 지와 같은 큰 틀에서의 판단과 같이 몇 번이고 되풀이되어 샘플 수가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된 것이 아닌 경우 인공지능이 판단하기 어렵다. 이러한 판단은 소위 '경험', 즉 지금까지의 다른 상황에서의 판단을 '전이'해서 실행하거나 과거 역사의 유사한 사례에서 '유추'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여러 가지 정보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으나, 최종적인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손에 맡겨져 있다.
인공지능은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해 온 과학기술의 혁신이 일상적 진료행위를 변화시켜 온 과정을 보다 짧은 시간에 보다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개연성이 매우 크다. 과거의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어떠한 직업을 없애고 새로운 직업을 등장시킨 것처럼 인간과 컴퓨터 기술을 다양하게 조합하는 경험하지 못한 업무 방식을 통해 인간의 창조성이나 사회의 생산성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인지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하겠다. 문제는 새로운 기술은 기회를 열어주지만 소수의 선도자가 시장을 지배하는 경향은 점점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출처 e-Newsletter 2016. 04 월호 No.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