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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드라마가 말하는 숭고함, 환상 속의 의료

의학드라마에서 비춰지는 의료와 현실의 의료 

김이연
고려의대 가정의학 

"나는 백신을 특허로 등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 태양을 특허로 신청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백신을 개발하여 인류의 소아마비 근절을 선언케 한 Jonas Edward Salk(1914-1995) 


(사진-태양의 후예)


최종회 순간시청률 40%를 육박했던 블록버스터 대작 ‘태양의 후예’가 말하는 태양이 저 소크 박사의 태양이라는 것은, 이 드라마의 원작이 공동작가인 김원석의 2011년 공모전 당선작 ‘국경없는 의사회’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의료계에 종사하는 이로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타작가 김은숙의 손길이 더해지며 군인과 의사가 등장하는, 전쟁과 재난 속에도 남녀의 애정관계가 만개하는 환상적(fantasy) 연애담은 중화권을 비롯 32개국에 수출되며 지금 이 순간도 한류를 창조하고 있다. 

의사가 보지 않아도 성장하는 의학드라마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 중 서너 명은 보았다는 이 드라마의 유행어가 전국을 휩쓸며 갖은 패러디를 낳을 때에도, 정작 의사들은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현상은 그리 낯설지 않다. 많은 임상의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의료나 의사가 소재가 된 한국 드라마를 그야말로 힘들어 한다. 첫 번째는 직업병과 같은 것으로, 극의 몰입도를 극단적으로 떨어뜨리는 옥의 티, 의학적 오류들에 관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피로한 상태로 귀가하여 마주한 TV 속의 의료현장을 보고 있는 것이 ‘여전히 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인 탓이다. 

그럼에도 최근의 한국 의학드라마는 문화콘텐츠 전반의 질적 성장, 상향평준화와 더불어 의사들도 즐길 수 있는 정도의 현실적 개연성, 의학 정보의 전문성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강박적인 임상의에게 눈엣가시 같은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전이 된 종합병원(1994, MBC)이래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던 하얀거탑(2007, MBC) 외에도 분과전문성을 추구하거나 파격을 더한 외과의사 봉달희(2007, SBS), 뉴하트(2007, MBC), 브레인(2011, KBS2), 골든타임(2012, MBC), 굿닥터(2013, KBS2) 신드롬(2012, JTBC), 닥터 이방인(2014, SBS)등도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왔다. 본격 연애물을 지향하지만 의학적 고증에도 신경을 쓴 응급남녀(2014, tvN)와 같은 최근작들에서 제작자의 노고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학드라마에서 무엇을 보는가
의사가 단지 인상적인 조연급으로 등장해도 캐릭터와 스토리에 대한 흥미가 증가하고 주연으로 나오는 기획작의 시청률은 기본 10%를 상회하는 상업적 이유만으로 의학드라마가 끊임없이 제작되는 것일까. 이른바 전문직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의료 외에도, 법률, 언론 등 다양하게 접근되어 왔다. 그러나 그런 다양성에 비추어 현재까지의 의학드라마가 담는 주제의식은 천편일률적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의학드라마를 즐겨보지 못하는 의료인의 딜레마가 출발하는지 모른다. 

메가히트작 ‘태양의 후예’는 그런 한국 의학드라마의 특성과 발달사를 감히 포괄하는 작품이다. 제목부터 강한 포부가 느껴지는 이 작품은 특수직군의 남녀가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에서도 불사조처럼 살아남아 극중 대사처럼 ‘암수 서로 정다운’ 장면으로 인기를 구가했지만,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그보다 훨씬 거대하고 야심차다. 

설정과 대사를 통해 2016년 5월 현재 한국인의 정서에 전파된 메시지를 고찰해보자. 

외과 과장 : (응급실 탈주하는 환자를 보러 가겠다는 강모연에게) “그래 빨리 잡아와요, 치료는 해줘야지. 의술 이전에 인술이니.” [1회] 

드라마의 첫 회부터 절대 명제가 등장한다. 극중 상급병원 교수를 꿈꾸는 여주인공(강모연, 송혜교 분)에게 미래를 약속하며 자신의 논문을 위탁하지만 결국 인맥과 재력을 따라 실력 없는 의사를 교수로 등용시키는 외과장의 발언이라는 것이 한 번 더 왜곡된 아이러니다.

송상현 : “의사는 재력이지, 그 다음은 체력이구. 실력은 실력이 없어.” [2회]

강모연 : “생명은 존엄하고 그 이상을 넘어서는 가치나 이념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치훈 : “난 그럼 적군도 다~ 치료해줘야지, 선서했으니까.” [3회] 

의사들은 스스로 실력보다 재력이라고 자조하지만, 역시 주인공은 조금 다른 면모를 보인다. 생명존엄성이 절대 가치라는, 실제 임상의는 생각은 해봐도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할 줄 안다. 이제 막 수련을 시작한 전공의(이치훈, 온유 분)도 이 드라마가 천착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으므로 인류애를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해맑게 드러낸다. 

드라마가 6회에 이르면, 마침내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재난현장의 처참함과 오버랩되며 장중히 울려 퍼진다. ‘제대로 된 감기 바이러스 치료법조차 찾지 못하는 의사’[7회]라고 냉소하다가도, 죽음을 맞은 이들로 인해 울부짖는 의사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고, ‘사망신고는 의사가 내린다’[8회]고 추켜세운다. 위독한 환자를 두고 도망치는 의사는 ‘의사가 아니’라고 독설하면서도, ‘주치의는 TV채널처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9회] 편든다. 

결국 의사의 독점적 권위는 생명 존엄성이 지켜질 때에만 인정해주겠다고 천명하는 이러한 태도와 더불어 현실의 의료상황을 반영하려는 시도도 멈추지 않는다. 치명적 전염병의 위험에도 환자를 살리느라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병상에서도 연구하여 치료법을 찾아내는 의사들의 모습[10-11회]을 보면서 자긍심을 느끼기보다 쓸쓸해지는 것은 왜일까. 

군의관 문제[13회], 리베이트[15회] 등 굵직한 이슈를 빼놓지 않고 다루면서도 의사에 대한, 의료에 대한 정의는 변하지 않고 견고하다. 

“이윤보다 생명이다. 생명과 바꾸어서 남는 장사는 없다는 깨달음을 주죠. ...나 이런 의사 됐어요. 그곳에서 보기에 나, 자랑스럽나요?” [15회 강모연의 대사] 

한국 드라마 속의 의료는 아직 환상적인 정답만이 존재한다. 자기희생과 사명감이라는 완고한 사회계약의 강요가 아니라 이상을 향한 자발성이, 전쟁 중의 영웅이 아니라 일상 속의 이웃이 보이는 의학드라마. 그런 이야기를 하고 들을 때를 기다린다. 

출처 ; 대한의학회 E-Newsletter No. 72 (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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