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사회의 의사는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역량 필요
이 영 미
고려의대 의인문학
2046년 6월 어느 날, ‘휴머노이드 로봇의사가 드디어 상용화되었다’는 기사가 대한의학회 뉴스레터에 실렸다고 가정해보자. ‘휴머노이드 로봇의사는 사람의 외형과 자연언어를 구사하며 감히 인간의 뇌 속에 담을 수도 없는 막대한 양의 정보와 지식을 탑재하고 있다. 환자의 증상과 몇 가지 검사소견만 들으면, 순식간에 임상추론과정(데이터 정보 처리과정)을 거쳐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진단과 처방을 한다. 환자가 걱정하고 슬퍼하면 공감하는 표정과 말도 자연스럽게 하여 정서적인 서포트도 인간 의사보다 더 일관성 있게 제공한다.’ 라고.
실제로 일부 질병에 대한 임상진단과 치료적 결정에 인공지능이 이미 사용되고 있다. 메이오 클리닉에서는 의사가 영상자료 판독을 1차적으로 시행하고 2차적으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영상판독 결과를 검토하여 판독오류를 제거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과 MD 앤더슨 암센터에서는 전문의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하여 암환자에게 맞춤형 처방을 제공하는 임상 추론과 의사결정과정에 ‘왓슨헬스’를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환자와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고 감정까지 추정하고 반응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출현하는 날도 곧 올지도 모른다.
최근 의료 관련 인터넷에서는 ‘인공지능, 진단과 예방을 넘어 치료 영역까지’, ‘자연어 알아듣는 왓슨, 의사 역할 대체할까?’와 같은 기사들을 접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도입이 보건의료계 혁신이 올 것에 대한 기대감과 반면에 ‘의사들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인가?’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자주 듣게 된다. 스마트기기를 이용하여 의료소비자들이 스스로 건강상태와 검사결과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의 출현으로 의료소비의 형태가 급변할 것이라는 예측도 불안을 가중시킨다.
필자는 더 발달된 인공지능이 의료계에 확산되면,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인간적 교감은 더욱 감소하고 각종 진단검사에 의존하는 현대 의학의 병폐-기계화와 비인간화-를 가속화, 고착화시키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었다. 그러나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 인공지능이나 휴머노이드 로봇과 관련 기사, 강의 등을 접하고 숙고하는 시간을 거칠수록 ‘테크놀로지에 예속화되고 인간성을 상실한 미래의 의료’에 대한 걱정은 오히려 조금씩 누그러졌다.
그 이유는 첫째,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창조·개발하고 조정하고 관리하는 주체는 인간이며 그 성과를 통하여 혜택을 받는 것도 사람들이며, 궁극적으로 인간과 사회에 이롭게 사용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임을 더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왓슨 헬스’와 같은 인공지능이나 각종 최첨단 기술을 보조적 도구로써 지혜롭게 사용하여 환자진료를 최적화하고 건강한 사회를 이룩한다는 본래의 목표에 더 근접할 수 있다. 이러한 첨단 인공지능 기술은 수많은 데이터를 찾아야 하는 의사의 수고와 시간을 절약시켜주고 근거에 기반한 의료 결정과 선택 과정을 돕고, 의사가 범할 수 있는 실수를 미연에 발견해준다. 인공지능 기술 덕택에 의사도 환자도 모두 좀 더 안전해질 수 있다.
둘째, 첨단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사람만이 구현할 수 있는 핵심 가치 즉, 타인존중, 공감, 온정, 유대관계 등의 휴머니즘을 더 갈구할 것이고 환자들은 이러한 자질을 갖춘 의사들을 찾게 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과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의사들은 테크놀로지에만 의존하여 천편일률적인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의사와는 확실히 구분될 것이고 미래 의료계에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의사소통능력 역시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활용되는 미래 의료계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자질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감정의 변화와 굴곡, 빅데이터를 이용해도 예측할 수 없는 개인적인 삶의 역사를 지닌 특수한 개체이기에, 진심 어린 눈빛, 감정을 헤아리는 목소리로 나의 스토리를 들어주고 따뜻한 손길로 나를 진찰해주며, 근거 바탕의 최적화된 의료적 결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나의 파트너가 되어주는 의사를 선호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의학교육은 왓슨과 같은 최첨단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내 비서처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환자에게 전인적이면서 개별화된 맞춤형 진료를 제공하는 미래의 의사를 키워내는 최적화된 시스템일까? 보건의료분야의 첨단연구와 산업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차세대 동력산업이라는 이 시대에 최첨단 의료 테크놀로지 연구와 산업화에 있어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키워낼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국제적인 의학교육의 방향은 ‘급변하는 사회와 보건의료의 요구에 대처할 수 있는 인재의 양성’이라는 기본명제를 깔고 있다. 예측불허의 미래에도 경쟁력이 있는 의사는 창의성, 유통성, 개방성, 협업능력, 자기개발 혁신능력을 갖춘 인재이다. ‘21세기의 플렉스너 보고서’라고 불리우는 ‘Educating Physicians; A Call for Reform Medical School and Residency’ (Cook,M et al.)에서는 (1) 학습 성과의 표준화와 학습 과정의 개별화, (2) 지식과 임상경험의 통합, (3) 탐구와 혁신 습관의 배양, (4) 직업 정체성 형성을 초점으로 의학교육이 재구성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을 다시 두 가지 핵심어로 요약한다면 ‘역량 바탕’과 ‘학습자 중심’의 의학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량바탕교육에서는 미래의 사회에서 사회적 요구와 책무를 달성하는 유능한 인재를 규명하는 역량을 설정하고 학습자들이 그 역량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교수학습방법을 구성하며 목표역량에 도달 여부를 다각도로 측정 평가한다. 즉, 진료 및 연구 역량 이외에도 의사소통, 협업, 자기성찰과 평가, 자기계발과 혁신, 프로페셔널리즘 실천능력의 요소를 정의하고 각각에 해당하는 세부역량을 설정하고 학습자의 발단 단계 따라 도달해야 하는 역량 수준(milestone)을 정하고 학습자가 보여주어야 할 수행능력을 객관적인 지표로 측정한다. 정해진 커리큘럼과 시간이 아닌 역량도달 여부가 졸업과 다음 단계로 이행이나 진급을 결정한다.
‘학습자중심’이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강조되어 온 것이지만, 디지털 세대에서는 더욱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지만, 의학교육의 대상자가 되는 학습자가 ‘디지털 원주민’이라면 교육자들은 ‘디지털 이민자’라고 표현할 수 있다. 원주민과 이민자는 뇌가 형성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언어, 사고와 행동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효과적으로 원주민들을 교육하고 싶다면 교수법의 전환이 필요하다.
Metha 등은 ‘파괴적 의학교육혁신(disruptive innovation in medical education)’이라는 용어와 함께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 뒤집힌 강의실(flipped-classroom), 디지털 배지(digital badges)와 같은 방법이 학습자 중심의 역량바탕교육을 현실화하는 방편이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즉 학습자들은 MOOC와 같은 온라인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지식을 자율학습하고, 교수들은 강의실에서 ‘flipped-classroom’ 모델을 적용하여 교수-학습자 간의 쌍방형 토론 학습을 촉진한다. 학습 콘텐츠 자체는 24시간 일주일 내내 접근이 가능하므로 학습자의 수준과 단계에 따라 예습, 복습, 반복심화가 가능하며, 교수-학습자 사이의 쌍방형 토론수업은 학습 내용을 정교화, 체계화시켜 업무 시 필요한 지식(working knowledge)으로 재탄생시킨다. 디지털 배지는 학습자가 온라인 코스를 수강하고 합격 수준 이상의 역량을 보유한 것을 평가를 통해 입증하면 교수가 학습자에게 수료증 배지(digital badge)를 제공하는 방식인데, 특정 주제 혹은 영역에 대하여 배지를 모은 후 자신의 배지 기록을 면허기관이나 입사 시에 제출하여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는 디지털 포트폴리오의 일종으로 수행기록수첩(예로, 전공의 수첩), 일회성 수행평가보다는 전문가 형성과정을 좀 더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의과대학과 전공의 교육훈련 기관들은 최소 미래 30-40년 후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의사의 역량이 무엇일지를 미리 예측하고 그에 맞추어 기본의학과 졸업 후 전공의 교육에서 학습자들이 갖추어야 할 역량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또한 역량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평가체계를 설계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전략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굴해야 한다. 지식 전수의 전당이었던 강의실 수업은 교수-학생 사이의 쌍방향학습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경쟁적 학습 분위기는 학습자 간 상호협력을 통하여 집단창의력을 창출할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 학습자들의 특성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그들의 학습이 효과적으로 발생할 수 있도록 교수 및 평가방법을 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교수, 학생, 기관차원의 자기성찰과 평가의 마인드,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의 요구에 대한 개방성, 수용성, 유연성이 필요하다.
** 참고문헌
1. Cooke M, Irby DM, O’Brien, Bridget C. Educating Physicians: A Call for Reform of Medical School and Residency. San Francisco, Calif: Jossey-Bass; 2010.
2. Frank J. et al. Competency-based medical education: theory to practice. Medical Teacher. 2010; 32: 638-645
3. Mehta NB, Hull AL, Young J.Stoller, JK. Just Imagine: New Paradigms for Medical Education. Academic Medicine. 2013;88:1418-1423.
** 참고기사
출처 : E Newsletter No. 74 (2016. 07 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