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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노조절장애의 의학적 이해

분노조절 문제는 아동기부터 지도해야


김 재 원
서울의대 정신건강의학 

최근 보복 운전이나 묻지마 폭행과 같이 분노조절 문제와 관련한 사건이 생기면 언론 등에서는 그 원인을 분노조절장애로 명명하는 일이 자주 있다. 이렇게 외국이나 한국이나 할 것 없이 분노조절장애라는 용어가 흔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정확한 정의 없이 단편적인 이해와 해석에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분노조절장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학적 관점, 구체적으로는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분노조절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지가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정신과적 진단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분노조절장애는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체계(DSM-5)에서 파괴적, 충동조절 및 품행 장애(disruptive, impulse-control, and conduct disorders) 분류 내의 간헐적 폭발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와 가장 관련이 있다. 이 질환에서는 공격적인 충동을 통제하지 못해서 보이는 반복적인 행동 폭발이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의 특징을 지닌다.

(1) 언어적 공격성(예: 분노 발작, 장황한 비난, 논쟁이나 언어적 다툼) 또는 재산, 동물, 타인에게 가하는 신체적 공격성이 3개월 동안 평균적으로 1주일에 2회 이상 발생함. 신체적 공격성은 재산 피해나 재산 파괴를 초래하지 않으며, 동물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음. 
(2) 재산 피해나 파괴 그리고/또는 동물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신체적 폭행을 포함하는 폭발적 행동을 12개월 이내에 3회 보임.

반복적인 행동 폭발은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어야 하고, 진단은 6세 이상부터 내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원인으로는 아버지의 육아 부재, 방임, 학대, 외상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단일 원인으로 설명되기는 어렵다.

간헐적 폭발장애 이외에 분노 증상을 진단기준의 핵심 증상으로 포함하고 있는 질환들로는 적대적 반항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 파괴적 기분조절부전장애(disruptive mood dysregulation disorder),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 경계성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같은 질환들이 있다. 이들 질환에서 정의하는 분노 증상의 강도(intensity)와 지속 시간(duration), 빈도(frequency)에는 서로 차이가 있다. 요약하면 현재의 정신의학 진단체계에서 분노조절장애라는 진단명은 없으며 분노 증상은 특정한 진단에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질환의 대부분에서 아동기부터 분노조절 문제가 시작된다는 점에 주목을 해야 한다. 특히 적대적 반항장애나 파괴적 기분조절부전장애는 주로 아동기에 진단이 내려지는 질환이다. 이는 부모-자녀 관계나 어린 시절의 가족과의 상호작용이 분노조절 문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부모-자녀 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 양육과 훈육에 있어서의 부모의 육아 태도가 아동의 자기 조절 능력과 자율성, 자존감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부모의 양육을 통해 아동은 신뢰감 있는 인간 관계의 기본을 갖추고, 훈육을 통해 자율성과 자기 통제 능력을 갖추어 나가게 된다. 이런 능력의 형성에 문제가 있으면 수치심이나 좌절감에 취약해지고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 생길 수 있으며, 이는 분노조절의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분노조절장애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면적(cross-sectional)인 관점에서도 분노 증상을 주 문제로 보이는 정신건강 문제나 정신질환과의 관련성을 생각하며 폭넓게 바라보아야 하며, 어린 시절의 양육과 훈육, 감정 조절 훈련 등과 관련한 부모-자녀 관계, 빠르고 즉각적인 반응과 만족을 추구하는 디지털 세대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같은 종적(longitudinal)이고 통합적인 관점에서의 이해도 같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의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뇌과학, 사회심리학, 교육학 등의 학문들과 공론의 장을 만들고 다학제적인 접근을 해 나가야만 분노조절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고 해결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E Newsletter No. 77 (2016. 11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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